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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0.04.28
글제목 김한수(58회)동문 부친상 조회수 638

 





알려드립니다. 김종태 장로님 (향년 88세) , 사랑하는아버님께서 미국현지시간 20일 새벽 3시 44분에 켈리포니아, 애플밸리시의 "세인트 메리 메디칼센터" (Apple Valley St. Marry Medical Center)에서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으셨음을 알려드립니다. 생전에 저희 아버님께 베풀어주신 많은 친구와 지인분들의 은혜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부고를 전하는 저는 돌아가신 김종태 장로님 1남 1녀중 ,장남 아들 김한수 입니다. 지난 2월1일 미국 켈리포니아의 저희집을 방문하시고 채  석 달도 않되어 이런 불상사를 치루게 되어 가슴이 미어지는 불효 막심함을 감당할 수 없으나 , 한국에 계시는 많은 부친의 친구분들과 지인들께서 전화로 작금의 너무 급작스런 상황에 당황하시며 애통해 하시는  관계로  궁굼해 하시는 분들을 위해 지난 80일간의 돌아가신 아버님의 미국현지 생활일지에 대해 함께 나누고져 합니다.  
2020년 2월1일 부터 2020년 4월20일까지의 미국에서의 아버님 발병 상황 전개내용-

#1
2020년 2월 1일, 저희 아버지 김종태 장로님과 어머니 정영란 권사님께서는미국  로스엔젤레스의  LAX 공항에 대한항공편으로 1시30분 도착 하시어 약 1년반 만에  손주손녀,자녀들과 식사하시고 아들이 살고있는 애플밸리시(로스엔젤레스 한인타운에서 약 1시간 30분거리) 로 이동하여 짐을 푸셨습니다. 이후 저희 가족(아들가족)들 지내시면서  오렌지카운티에 사는여 동생네부부역시  자주 방문하여 사위와  골프도 치시고 외식도 하시며 즐겁게 시간을 보네셨습니다.
또 이따금 손주,손녀가 있는 한인타운이 있는 LA에 방문하여  한인교회  주일참석도 하시고, 주로 평상시는 애플밸리에 있는 제가 출석하는 장로교회에 주일마다 참석하시며 성도들과 교제도 하시고 하셨습니다.  당신은 미국에 계시지만  뉴스를 통해 한국의 코로나 확산 소식과 선거 소식들을 접하시며, 늘상 고국에 두고오신 어머니와 아버지의 지인분들에 대한 염려가 끊이지 않으셨엇습니다.


그러던중 3월10일경부터 미국의 심각한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세가 시작되며 생활에 큰변화가 찾아왓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자택격리 체제가 발표되고 친구,친인척을 비롯한 어느누구도 서로 방문하지도 못하고 만날수도 없는 급속한 상황변화가 왓습니다. 답답한 심정이었으나   꼼짝 없이  가족들과 집에만 머물러 있으시게 되었습니다.


집에서 마당만 산책하며 하루하루를 지내시던 중 2020년 3월19일 경부터 경미한 천식 증상이 나타나시기 시작하셨습니다. 한국에서도 약간의 증상이 가끔있었던지라 그리 대수롭게 생각치는 않으셨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미국 현지의 상황이 코로나로 인해 병원방문이 극히 제한되고, 일반인들의 병원기피현상까지 생기면서,  호흡기 질환을 가진 해외 방문자이신 저희 아버님께는 더더욱 병원 방문은  꺼려 지는 일 이셨습니다.  그러나 증상이 호전되지않고 차츰  심해 지는 것 같아서 서울에서  다니시던  서울 고양시의 한 병원에 전화 하시고 지인분들의 도움으로 천식 치료제(흡입기구)를 우편으로 받아 지속적으로 사용하시며 증상이 호전되기를 기다리셧습니다. 의사들의 조언 은  천식으로 크게 잘못될 일은 없으니 흡입기구만 잘사용하시면서 약을 드시면  4월경 돌아오실때까지는 아무일도 없을 테니 걱정 마시라고 빨리 돌아만 오시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점차 심해지는 호흡곤란증상으로  혼자서 세안이나 목욕을 하시기는 힘든 상황이 오고 결국 움직이시지 않으면 그나마 호흡곤란이 줄어들고 움직이면 다시 시작되는 힘겨운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2020년 3월30일, 더 이상 부친의 상태가  약으로는 호전될수 없어서 코로나 이동금지 명령에도 불구하고 로스엔젤레스 한인타운에 있는 한인 병원 방문을 강행하게 되었습니다. 담당의사는 주사한대와 약을 주시며 너무 걱정하지 말라햇고, 그래도 미덥지않아 한의원도 방문하여 침을 맞고 약도 지었습니다. 당일 LA에 있는 제 아이들이 거주하는 집에서 하루를 주무시고,다음날인  3월31일   한의사의 권유로 침을 한번 더 맞고,  4월2일 집이 있는 애플밸리로 돌아 왔습니다.
그리고 당일날  아버님의 건강상태를 고려하여 당초 4월11일로 되어있던 대한항공예약을 4월20일 (일요일)로 전화로 연기하고 아버님의 건강상태를 고려하여 좌석도 비지니스석으로 업그레이드 하였습니다.


아버님은 어찌하던지 한국만 돌아가면 자가격리가 될지라도 병원 입원이 가능하니 그때까지만 잘 버티면 된다고 누차 말슴하셨습니다.


집으로 돌아오신후  부친의 상태는 눈에 띄게  좋아지시어 완치는 아니셨으나 혼자서 세안과 화장실 가시는데는 별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약 일주일  정도  지나면서  좋았던 상태가 다시 악화되기 시작하였고 또한 미국현지의 코로나 전염 상황도 극에 달했습니다.  코로나사태로 미국현지의 확진자와 사망자가  늘어나고 도시가 무인지경에 이르게 되자, 부친께서도 가족들 걱정에 이동을 최대한 자제시키시는 눈치셨습니다. 병원에서 받아온 약이 떨어질즈음 다시 LA병원병문을 권유드렸지만 , 당신은 이동하시 힘이 드시니 저더러 조심해서 처방약만 더 받아왔으면 좋겠다고 하시어 , 2020년 4월 10일 같은 병원을 방문하여  의사에게 약만 조제받아 가지고 돌아 왔습니다. 

#2
그러나 4월11일 이후 에는 약을 드셔도 오히려 하루가 다르게 이전의 힘겨워하실적 상태로 나쁘게 돌아가기 시작하더니 2020년 4월 18일 토요일아침 부터 중증이 나타나기 시작 하셨습니다.  아침공복에   쳇증을 호소시며 오한을 느끼셧습니다. 즉시  손발 사혈을 하고 소화제를 드신후 증상이 조금 나아지며 몸의 온기를 회복하셧습니다.  당일  토요일 저녘에는 월남국수를 배달해와서 조금드시기도 했습니다.  내일 아침이면 짐을꾸려서 LA로 이동하고 그곳에서  하루머물고  바로 그다음날 인 20일 월요일 저녘11시50분 비행기로 한국으로 돌아갈수 있으시다며, 이제  이틀만 견디면 비행기를 탈수 잇다고 , 한국만 가면 모든 상황이 잘 될 것이라고 하시며,  평상시 당신답게도  꼼꼼히도 짐을 다꾸려 놓으시고 잠자리에 드시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날 18일 토요일  밤부터  갑자기 호흡곤란이 심해지기 시작 하셨습니다. 혼자서 이겨보려던 힘겨운 사투는 자정을 넘긴  일요일 19일  새벽까지 잠을 못이루시게 하였고 , 심한 고통으로 고 아침 6시부 일어나셔서 밤새 지치신 몸을 힐체어에 기대어 힘겹게 호흡하고 계셨습니다. 아버님께서 는 지금까지 벼텨오신 것 처럼, 여전히 당신께서 조금만 견디면 호흡이 다시 돌아오고, 그틈에 비행기만 타면 된다고, 만일 아픈기색이 있으면 비행기를 또 놓치게 될거라는  아슬아슬한 탈출계획에만 집착 하셨던 것 같습니다. 아마 자식들에게 부담주지않고 하루라도 빨리 본인이 컨트롤 할수 있는 한국으로 돌아가시려는 생각을 버리지 않으셨던 것 입니다.   아버님의 걱정을 아는터라 엠 블런스를 불러 응급실로 실려가면 아무리 코로나 상황이라도 병원에 바로 들어갈수 있다고 재차 말씀드려도 조금만 내버려 둬 달라고, 당신이 스스로 할 수 있다고  계속 혼자 이겨내시려고 안간의 힘을 쓰셨읍니다. 이모든 상황이 결국 아버님을 극한의 상황으로 몰아가게 되었던 것 입니다. 당일  19일 일요일 오전 10시30분경  TV로 주일 예배를 보시는 아버지의  숨소리가 점점 더 거칠어져 가실무렵 ,저역시 무슨생각에서인지 LA공항에 가려면 증상을 호전시켜야하니 다른 약이라도 구입해볼수 잇을까하여 집을 나섰습니다. 동네 약국에 가서 약사와 상의 하여 천식용 수증기 흡입기구를 구매하여 11시경 집으로 돌아오며 전화를 드렸습니다. 어머님은 상태가 않좋으시니 그냥 빨리오라고 하셨고 재가 도착하기 약 5분전 아버지는 " 나 좀 자야 되겠어" 라는 마지막 말슴한마디 남기시고 그대로 숨을 놓으셧던 것 같습니다.  오후에 LA로 출발하여야 함으로 어머니께서는 따뜻한 물수건으로 잠든 아버지를 세안시켜드리려고 손을 만져보다가 힘없이 늘어지는 아버지의 손을 발견하시게 된 것 입니다. 제가 달려가보니 휠체어에 편하게 앉아 고개만 살짝  떨구고 계셧습니다. 맥을 잡아보고 숨소리를 확인해도  호흡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즉시 911에 전화하여 응급차량을 요청하고 구조대원과 통화를 하며 긴급CPR를 시작하였습니다.  코로나 바이어스 상황으로 인해 약 10분후 경찰들이 먼져 집에 들어 왔습니다. 그리고 모든 상황을 확인한 후  온갖 방호복으로 중무장한  구급대원들과 엠블런스가 도착 햇습니다. 약 20분간의 긴급처치에도 맥이 돌아오지 않자 응급대원들은 어렵다는 말과 함께 미안하다 더이상 할 수 잇는 방법이 없다 며 떠나려 하였습니다. 경찰들은 본인들은 남아서 사후 일처리를 돕겟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게 무슨말이냐 니들이 뭘 돕겟다는 것이냐 .  잔말말고 응급대원들이 남아 좀더 인공호흡과 압박을 실시해 달라고 간곡히 매달렸습니다. 약 10분여에 걸친 추가 작업후 아버님의  맥박은 미세하나마 순간적으로   돌아왔습니다, 잊 비로서 병원으로 이송 할수 있게 되엇던 것입니다.   응접실 마닥에 누운 아버지 곁에 식구들의 접근을 막고 서잇던 경찰들이 울고 있는 어머니께 다가와 이제는 병원으로 이송하게 되었으니 울지 마시라고 이야기 햇습니다. 아버님을 들것에 실어 가까운 종합병원 (애플밸리 샌 메리 메디칼센터)로 옮길테니 나중에 병원측 연락받고 오라며 아버님만 모시고 병원으로 츨발 하였습니다. 계속 울고만 계시는 어머니께 다행이 맥은 돌아왔으니 아버지 살릴수 잇다고 걱정마시라고 어깨를 꼭 잡아 드렷습니다.

 

#3
여기병원은 코로나 사태로 모든것이 패쇄되어 신분확인 없이는 안으로 들어갈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못 미더워 앰블런스를  뒤 따라가 응급실로 이송되는 장면만 밖에서  확인할 수있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와  병원의 연락만 기다리는초조하고 답답한 시간이흘렀고 그사이  엘에이에 있던 저희 아이들 손주,손녀 와 아버지 잠자리를 만들어드리려 엘에이에서 오시길  기다리던 저희 안사람이 급히 올라왔습니다. 저녁무렵   Sam이라는 중년의 인도계 담당의사로 부터 연락 이 왔습니다. 그는 아버지께서 얼마동안 호흡을 않하셨는지 물으며, 그시간이 20분을 넘엇던것  같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의사에게  마지막으로 아버지 의식을 확인했던  순간이후 약 15분내에 내가 집에 왔고 그렇다면 무호흡은 길어야 10분 정도 일 것 이라고 하였으나 , 의사는 말하기를 이미 들어오실때부터 제 아버지의 심장은 정지 되셨고 그이후로 다른 기관들도 잇따라 좋지 않은 상황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더 이상 따져 물을수 없었습니다. 무조건 최선을 다해서 제발 살려만 달라고  아버지는 한국에 가셔야한다고 쓸데없는 상황설명까지 더하여 간곡히 부탁 하였습니다. 저녘9시가 되어 다시 연락이 왔습니다. 담당의는 각 장기별 스페셜  의사들이 도착 했다며   폐 전문 신장 전문 의사들과 공조하여 아버님을 치료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무조건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11시경  병원의 간호사가 다시 전화가 왔습니다. 폐에 물이 차서 빼야하는데 기구를 삽입할수 있는 보호자 허락을 해 달라는 것 이엇습니다. 그리 해 달라고 햇습니다. 이제 시간은  자정을 넘어가기 시작하엿습니다. 남아있는 우리가 할수 있는 일은 기도밖에 없다며  내일 아침에 기적같은 일이 일어 나게 해달라고 모두함께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고, 놀람과 피로에 지치신 어머니를  잠자리로 모셔드렸습니다. 


한국같은 일상 상황만 아시는 어머니 이신지라  병원에 입원한 아버지얼굴을 보고 싶다 하셨습니다. 보체시는 어머니께 잠시 눈 부치시고 내일 아침에 어머니 만이라도 병원에 다녀오실수 있게 해보겟다고 말씀리고 아내와 향후 대책에 관해 상의 하던중  생각지도 않게  새벽1:30 . 병원으로 부터  연락이 왓습니다. 현재 아버지의 혈압이 계속 떨어지고 있어 인위적으로 간신히 생명만 유지 시키고 있느나 뇌도 이미 기능을 다했고 심장을 비롯한 다른 장기들이 산소공급지연으로 이미 작동을 멈추어서 이제  여기서  더이상 할수 있는 방법은 없으니 가족중의 단 한명만 중환자실로 들어와 결정하고 마지막 인사를 하라는 것 이었습니다. 눈앞이 캄캄해지며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절망감에 밀려있던 피로감이 한꺼번에 옴몸을 짖눌렀습니다. 우선 어머니가 놀라실까봐 차근차근히 상황을 말씀을 드리고 "어머니 이제 아버지 보네드려야 만 할 것 같 습니다. 병원에서 저만 오래요 그러니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라고 말씀드렷습니다. 심장이 나쁘신 어머니가 감당하시기엔 너무나 가혹한 상황을 어머니 부담으로 지워드릴수 없엇기 때문입니다.  , 

 

#4
새벽 2시 어둠과 고요가 무겁게 내려앉아 있는 병원주차장을 한참 돌아  건물뒷편  직원 출입구 쪽에 차를대고 저를 에스코트해서 병원으로 데리고 들어갈 관계자를 기다렷습니다. 병원측은 저를 대기실로 데려간후 마음의 준비가 되면 알려달라 하였고, 약 30분간뒤 저는 아버님이 누워계신 중환자실로 안내되었습니다. 처음본  중환자실 은 생각보다 모든 기기들이 완벽하게 잘 되어있었습니다. 제 생애에서 가장 길었던 잔인한 하루를보네고 비로써 만나뵙게된  아버지의 얼굴은 정말이지  너무나도 눈부실정도로 아름답고 깨끗하셨습니다. 상상하기도 싫은 험악한 모든 치료들을 견디신 분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아름답고,고귀하고 눈부신, 근엄하기까지 하신 모습이셨습니다. 평소처럼 잘 빗겨진 단정한 하얀 백발은 눈부셨고, 평안한 얼굴표정과 맑고 깨끗한  피부는 너무도 건강해 보이셨습니다.  전자장치에는 각종 알지못할 수치들이 오르락 내리락 하였는데, 간호사의 말은 맥박이 낮아서 기기들을 통해 억지로 잡고 있다고 했습니다. 저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라고 하기에, 의식이 없으신데 정말 들으실수나 있겟냐고 반문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간호사는 대부분의 환자가 코마상태의 임종직전에 의식이 없어보여도 듣고 느끼고 다 한다는 것 이었습니다. 저는 우선 하나님께 기도 하고 아버지께 평소처럼 땡깡을 부렸습니다."아버지 도대체  이게 뭡니까? 그러게 제가 응급실 가자했잖아요. 왜 끝가지 고집 부리시더니 이게 뭡니까?"  그러다가 다시 "아버지 미안해요 내가 잘못했어요...내가 어리석어서 아버지를 보호하지 못했어요 " 라며 겉잡을수 없는 애통함으로 마구 흐느끼게 되었습니다.  한참동안 내 감정만 털어놓다가  문득 이귀한 시간을 이리 보내서는 않되겟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곁으로 가시는 아버지가 가벼운 마음이 드시도록  둘만의 약속을  햇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걱정 마세요. 아버지가 쭉 해오신것 처럼 어머니 모시고 병원도 다니고 한의원  침도 맞고, 교회 새벽기도 금요철야 운전도 해드리고 절대 혼자 다니시는 일 없이, 아버지처럼 껌처럼 붙어 있겟습니다.그러니 걱정 마시고 하나님 품으로 편히 잘 가세요," 라고 아직은 온기가 가시지 않은 아버지의 손을 꼭잡고 눈부신 하얀 백발을 쓰다듬으며 차분한  목소리로 마지막 인사를 드렸습니다. 신기하게도 그순간 맥막이 50,40,30,20,0로 떨어지기 시작햇고 중환자실은 요란한 싸이렌이 울리며 밀려들어오는 의사들로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50키로그램이나 나갈까 말까한 작고 마른 동양 노인의 가슴을  백안의 거구들이  올라타 마구 누르기 시작햇습니다, 아버님의 몸은 침대위에서 마구 출렁였고 입에 꽂힌  투명한 산소호흡기 밸브로  핏물이 역류해  올라오기 시작햇습니다. 오히려 제 입에서 괴성이 나오고 신음소리가 터져 나왓습니다. 저는 STOP! 이젠그만. 더이상 하지 말아 달라고 의료진들을 모두 멈추었습니다. 이제 됬다고 그냥 보네드리자고 ,

담당의사가 제 어깨를 두드리며 자신들도 더이상은 할 방법이 없다며 저를 다시 옆방으로 인도했습니다. 잠시후 의사가 나와 아버지의 임종시간이 적힌 서류를 내밀며 싸인하라 하였고  그 길었던  순간에 마침표가 찍혀진 시간은 종이에 크게 인쇄된  2020년 4월 20일 새벽 3시 43분 이었습니다.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리며 아버님이 평상시 제게도 뭐든 자상하게 , 지나칠정도로 상세히 설명해 주시는 분이시라 아버님의 오랜 친구분들 또한 그러하 시리라 생각했습니다. 

이글은 생전의 아버님의 성정을 고려하여 돌아가신 아버님이 각별히 생각하시던  분들께만  상세히 알려 드리는 제 아버지의   "80일간의 미국 병상일기"  라고 해두겠습니다.


코로나 19관계로 정확한 장례나 시신처리등의 향후 스케쥴이  아직 확정되지 못하고 잇습니다.

다만 현재 확정된 것은

1.시신은 화장 할 것 입니다. (미국은 화장절차도 시간이 많이 소요됩니다. 짧게는 한주일 길게는 두주정도 걸릴것 같습니다.)
2.미국에서의 발인예배는 화장 일정이 잡히는데로 상황을 고려해서 다시 알려드리겠습니다.
3.정식 장례행사는 향후 아버님 시신 화장후  어머님이 유골함을 가지시고 서울로 돌아가시는데로  다니시던 교회 (원당 순복음교회) 와 상의하여 치룰 예정입니다.
4.어머님 귀국은 한국의 상황이 사회적거리두기가 완화된 직후가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변동상황에 대처하면서 계속해서 진행 상황을 알려드리겟습니다. 

감사합니다.

미국현지주소:
13717 Cochise Rd. Apple Valley, CA 92307
전화번호: 핸드폰>760-954-5701
집전화번호> 760-784-9088

미망인 : 전영란여사